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는데 오니까 진천군 면사무소애서 직원분이 나오셨습니다. 제가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는 걸 들으시곤 기초 수급자 등록을 도와주러 오셨답니다. 그렇게 선교사님을 통해서 도움을 받아서 수급자가 되었고 나러에서 각종 혜택을 통하여 그나마 그때는 큰 도움을 받아서 살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먹고만 살 수가 있었지 부수적인 활동은 제약이 심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으며 또한 나에게 있는 빛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이라 계속되는 빛에 대한 전화와 압박은 여전히 심했으며 여러 요인의 심리적 압박은 심했습니다. 저희 어머님은 이미 3년 전 폐암으로 돌아가신 상태입니다.
전 그래도 이렇게 도움을 통하여 살 수가 있었고 또한 오창에서 폐목재 사업을 하시는 사장님의 도움으로 화물차 운전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사장님이 아무런 세금 신고 없이 저에게 현금으로 월급을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8개월 정도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검찰청에서 출석하라는 통지서를 받게 되었고 난 아무 생각 없이 출석했습니다. 그런데 전에 내가 하던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약속어음 9억 중 40% 이상은 갚아야 형사 처벌은 면 할 수가 있다고 하더군요. 결국엔 전 그것을 갚을 능력이 되지 않으니 집에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한 채 바로 구속 수감 되었습니다.
경제 사범으로 2년 6개월이라는 선고를 받고 공주 교도소로 이감되었습니다. 진짜 처음엔 세상 모든 게 다 무너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저 모든 걸 포기한 상태였으니까요. 처음엔 아내가 면회를 와도 접견을 거부했답니다. 볼 면목이 없었으니까요. 그저 미안함 밖에는 없다 보니까 얼굴을 볼 면목이 없었으니까요. 처음엔 교도소라는 게 그렇게 무섭게만 느껴져서 항상 긴장한 상태이다 보니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었답니다. 그러다 보니 몸도 망이 아니었습니다. 한 3개월째는 너무 심해서 혈당이 그냥 올라가서 또 의식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외부에 있는 대형 병원까지 후송되어서 응급실에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번과 똑같은 상화이였고 결국엔 또 가족에게 연락하여 또 한 번 준비하라는 조치를 받게 되었고 난 그 걸로 인해서 긴급구속정지를 받아서 편하게 치료를 받고 3일 만에 깨어나 퇴원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집에서 쉬기를 두 달 정도 할 무렵 또다시 저를 데리러 왔더군요. 다시 집행되었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전 다시 교도소로 돌아가게 되었고 다시 이어서 수감 생활은 하였습니다.
이제는 자연히 모든 걸 포기하는 게 자여누스러워 지더군요. 그러니까 정말이지 그냥 편안하게 휴식을 취ㅏ게 되더라고요.
제 삶에 있어서 그렇게 편안한 마음은 이때가 생전 처음이었답니다. 그렇게 그 속에서 동화되어 가고 너무 할 일이 없어서 처음으로 성경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읽다 보니 거의 20일 만에 한 권을 다 읽게 되었고 이어서 노트에 필사를 시작하였습니다. 필사를 중간쯤 한 것이 한 3개월 걸려 쓸 때 저희 교도소에 복음송 가수에 찬양하러 왔습니다.
소향이 가스펠 가수시절 저희 교도소에 찬양을 하러 왔는데 의무적으로 강당에 다 모여서 그냥 그렇겠지 하며 별 관심들도 없이 떠들며 있었는데 갑자기 소향이 노래를 시작하자마자 전부다 번개 맞은 거 마냥 조용히 노래에 빠져 들게 되더군요.
얼마나 목소리가 아름답던지 진짜 천상의 목소리로 들리더군요. 중간쯤 시간이 흐를때쯤 전 갑작이 창가를 보게 되었고 엄청나게 하얀 빚이나는 천사들이 노래를 듣고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진짜 황홀경 그 자체 였습니다. 그렇게 약 5분이 흐르고 그 모습이 사라졌고 난 옆 사람에게 혹시 창가에 천사를 보았냐고 물어보았는데 그 친구는 나더러 너 돌아냐며 놀리더군요. 하지만 저는 그때 그 느낌은 지금도 잊지않고 있답니다. 그렇게 모든 시간은 지나고 다시 돌아와서 성경 필사를 이어서 하게 되었고 약 5개월을 걸처서 필사도 다 하게 되었을 무렵 저에 큰 형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전 돌아가시 약 3개월 전부터 형님에게 우리 서로 용서하고 얼 굴이나 한번 보자고 편지를 여러번 보냈는데도 전혀 답장이 없었답니다.그래서 더욱 충격을 받았습니다. 성경 구절에 아버지가 잘 못하면 장자를 데려가는 구절이 있었거든요.
저희 잡안 아버지 형제들을 보면 하나같이 장자들은 잘못해도 무조건 믿고 싸고드는 그런 아버지들 이었습니다. 밑에 자식들은 아예 있는 취급도 못 받았으니까요. 그렇게 편해가 심했습니다. 형님이 돌아 가시고도 장손만 찿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니 저야 당연히 쓸모없는 자식 취급 받는게 당연한 거였으니까요. 그렇게 또 상처를 안고 2달후 출소를 하게 되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