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몸은 엉망진창이었습니다. 그래도 답은 얻지 못하고 계속 이어졌고요. 하는 일마다 한마디로 말하면 내게는 돈 하고는 거리가 멀었지요. 모든 게 3개월도 못 가서 다 망했으니까요. 그런 와중에 스트레스는 말도 못 하게 엄청 심해서 혈당이 1000이 넘어가 응급실에 실려 갔지만 1시간 안에 의식이 돌아오지 않으면 사망한다는 진단을 받고는 가족에게 마음에 준비를 하라곤 했습니다. 하지만 운명은 죽을 팔자가 아닌지 다시 살아났습니다. 보통 이런 경우는 몸에 장기가 90% 이상은 손상되어서 힘들 다는데 어찌 된 건지 모든 장기는 매우 정상적이었답니다. 의사들도 신기한 경우라고 했으니까요.
그렇게 다시 살아났어도 정산은 못 차리고 똑같은 생활을 계속 반복되게 살았으니까요. 무엇이든 열심히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저는 또 원양어선을 타게 되었습니다. 3년 동안 태평양 한가운데서 참치를 잡으며 그저 이 깨물고 악착같이 견디며
생활을 했습니다. 제가 통장을 어머니에게 맡겨놓았다는 게 선택의 큰 실수였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벌어서 전 그저 그 돈으로 작은 아파트 하나와 당구장이나 운영하는 게 꿈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뭔지 모르게 불안감이 밀려오기까지는 제가 한국에 들어오고 1시간도 안 걸렸으니까요. 집이 다 이사를 가고도 제 회사에 주소나 전화번호 하나도 남겨놓지도 않았고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참 마음이 착잡하면서 불길한 생각이 스치더군요.
3년 전 살던 동내 동사무소를 찾아가 어렵게 수소문한 결과 부모님은 경기도 오산으로 이사를 하였고 큰 형님은 옆동네 장림동에서 살고 있더군요. 집에 돈도 없었는데 무슨 돈으로 형님은 전세를 얻어서 갔으며 부모님은 집세 빼봐야 이사 비용도 힘들다는 걸 뻔히 알고 있는 터였습니다. 결론은 형님 집을 찾아서 같지만 참 아이러니 하게도 별로 반가운 기색은 없었습니다. 때마침 추석 일주일 전이라 형님이 택시를 하고 있었고 한다 자기가 조금 일찍 올라가는 대신 택시비를 저 보러 25만 원을 내면 같이 가겠다고 하면서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렇게 반 강제로 돈을 지불하고 온 식구가 다 타고 올라갔습니다.
부모님을 보는 순간 인사를 하는데 그저 한마디 어서 와라가 다였으니까요. 아직도 저라는 존재는 없다는 게 뼈저리게 느껴지더군요. 그렇게 하루에 시간은 지나고 어머니에게 제 통장을 달라고 했는데 무슨 일인지 통장을 줄 생각을 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왜 이리 안 주냐고 다그쳤지요. 그렇게 받아 든 통장은 잔액이 3만 원만 남아 있더군요. 전 거의 할 말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지만. 어머니는 이사를 하면서 형이 돈이 없어서 전세금으로 3천만 원을 주었고 작은형에게도 1500만 원 주고 방을 얻어 주었으며 그것도 모자라 대학교 학비를 3년간 아버지도 모르게 어머니가 대주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거기다 큰 형님은 개인택시 받기 전 대형 교통사고를 쳐서 합의금 3천만 원이 없으면 형사 처벌에 개인택시 자격도 없어져 택시도 못 받는다고 거기에 또 주었으니 결국 1억이 조금 넘는 금액이 전부 형들에게 들어간 셈 이더군요.
전 진짜 그때 당시 목숨 걸고 일하러 간 것인데 이렇게 형들만 좋은 일 시켰으니 그냥 허무하더군요. 하지만 그냥 이러고 말았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그저 형님들에게 고맙든 미안하든 하는 소리 한마디만 듣고 싶었는데 나에게 돌아오는 소리가 가관이더군요. 자기들은 내 돈 십원 찌리 하나 받은 적 없으니 앞으로 형이라고 아는 척하지 마라고 하더군요. 어머니는 분명히 줄 때 이 돈은 동생 돈이니 나중에 보면 꼭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라고 당부했다는데도 그렇게 아무리 정 없는 형제 일 찌라도 이렇게 서로 원수 아닌 원수처럼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게 전 또다시 방황이 시작되었고 마음을 잡지 못해서 떠돌기를 반복하면서 지내다가 늦은 나이에 군대를 단기 사병으로 입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저에겐 인생의 휴식 같은 시간이
18개월 동안 군 생활이 처음 늦겨보는 편안함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사귄 1살 차이 친구 2명이 그나마 제 인생에 첫 친구를 사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군 마치고 퇴근하면 3명이 뭉쳐서 놀곤 했으니까요.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친구들과 놀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전 그때가 제일 행복했으니까요. 하지만 그것도 1년 정도만 가더군요. 친구 형님 결혼식에 같다가 밤늦게 까지 우리는 놀다가 잘고 모텔을 찾으러 가던 중 친구 한 명이 힘들다고 하면서 먼저 가서 방 잡으라고 해서 뒤에 남겨 놓고 왔는데 글쎄
뺑소니 교통사고로 현장에서 즉사해서 죽었답니다. 우리 둘은 군인 신분으로 경찰서 들락 거리면서 조사를 받는데 우리를 범인 취급 하기에 정말 답답한 심정이었습니다. 결국 그 사고로 인해 우리들은 군 제대 후 헤어지고 다시 혼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참 제인생은 뭐 하나 풀리는 게 없었으니 이젠 외로움 보다 분노가 치밀어 올라 오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