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아이러니 하게도 병원에서 사망 선고만 받은 게 3번이나 되었는데도 결코 죽지도 않고 계속 살아난다는 게 저로써도 이해가 안 갔습니다. 저로써는 오히려 죽을 수 있으면 죽고 싶었으니까요. 그래서 죽는다는 것에 그 어떤 두려움도 없었답니다. 죽자 하니까 더 안 죽게 되는 것인 가봐요.
그렇게 병원에서도 기적이라며 놀라고 나도 놀랐지요. 제가 한 것 이라고는 그저 먹고 죽자는 것뿐인데 이렇게 될 수가 있는 건지 의아해했지요. 단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까 아무 생각 없이 지내게 된 것이 어찌 보면 음식괴 맞아떨어져 이렇게 된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그때 코로나도 제일 심할 때였습니다. 결국 모든 병은 스트레스와 부정적인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에서 촉진되는 게 사실이더군요, 제가 가끔 세상 걱정을 하는 날에는 어김없이 통증도 더욱 심하고 얼굴도 시커멓게 변하면서 몸 컨디션이 완전히 무너지는 걸 경험했답니다. 사람들은 보통 암에 걸리면 아이고 이제 나는 끝났네, 내가 암이라고 왜 내가 암 이냐고 하면서 암 자체를 무서워하고 자꾸 그쪽으로만 생각에 몰두 한다는 사실입니다. 병원에 있을 때도보면 사람들이 난 살고 싶은데 암 이래 하며 하소연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는데 그런 분들이 대체로 보면 암 상태와 상관없이 3 - 6개월 안에 90% 이상이 사망하시는 걸 관찰할 수가 있었습니다.
병을 우리 인간이 충분히 극복할 수가 있다고 저는 믿어요. 제일 먼저 병이라는 생각 자체를 버리고 내가 더 강하다는 의식과 모든 행동을 긍정적으로 한다면 충분히 이겨낼 수가 있다고 저는 확실히 믿습니다. 지금의 제 상태가 그러 하니까요.
이혼하고 저는 친누나 한분이 계셨는데 유일하게 찬했던 누나였습니다. 누나도 혼자 사셨고 해서 저에 뒷바라지를 해 주시고 계셨지요. 이때부터 갑자기 고양이가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현재 저의 상태로는 키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기에 더욱 망설여졌습니다. 그러다 누나가 한번 키워 보라고 하기에 용기를 내어서 옥천군 동물보호소병원에 연락해서 페르시안 암컷 한 마리를 입양하게 되었습니다. 밖에 버려져서 1년 이상을 생활한 유기묘였습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 하게도 제가 키우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제가 도움을 받는 신세더라고요.
전 그때까지만 해도 쓰러지고 응급실 실려가기를 한 달에 2번은 꼭 했으니까요. 저혈당 쇼크 샤가 그렇게 잘 오더라고요.
수술 후 위가 없으니 당 조절 자체가 매우 어려웠답니다. 그러니 내 방에서 같이 지내는데 제가 쓰러지면 고양이가 그렇게 소리를 계속 내더랍니다. 누나가 한 말입니다. 그러니 고양이가 그렇게 이쁘고 귀여울 수가 없었답니다.
그렇게 살다 보니 내 마음속 한 구석에도 진짜 사랑이 있었는지 고양이(이름:샤샤) 이를 친딸처럼 대했고 실제로 매일 사랑한다는 말이 나오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샤샤를 만난 지 6개월 정도 되었을 때 갑자기 샤샤가 밥도 안 먹고 삐쩍 말라가는 것 이었어요. 전 깜짝 놀라서 부랴부랴 데리고 동물병원을 찾아 같고 검사 결과 고양이 사망률 1위인 신장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신장 정상 수치가 0.8이라는 수치가 14가 나왔으니 선생님은 너무 늦었다고 집에 가서 편안하게 쉬게 하라고 말씀을 하시기에 이렇게 높으면 답이 없다며 그냥 돌려보내더라고요,
( 지금은 이렇게 건강하고 얌전하게 살고 있습니다.)
전 제가 다니는 병원에 부탁해서 피를 맑게 해주는 링거를 한 박스 구매해서 하루에 두 번씩 총 200미리를 직접 주사를 나 주면서 고양이 신장 수치약도 2번씩 급여하고 처음 한 1년은 먹지를 않아서 숟가락으로 하루 4번씩 밥을 먹여가며 1년 정도를 간호해 주었답니다. 왠지 샤샤가 잘 못되면 내가 더 힘들어질까 봐 더 지극정성을 쏟은 것 같아요. 참 샤샤도 고생 많이 했지요. 주사 한 번 맞을 때마다 시간이 한 15분 정도는 걸렸으니까요. 고양이는 참을성이 최대 3분이거든요. 샤샤도 자기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자기를 위해서 한다는 것을 느낌으로 알았나 봐요. 그렇게 고생고생해서 지금은 사진처럼 건강하게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고, 지낸답니다. 어쨌거나 제가 그나마 0.2%로라도 변할 수 있었던 계기가 바로 샤샤 덕분이었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질 머리나 성격은 그대로였으니까요. 하지만 동기부여가 된 계기가 뭐였냐면 나는 그냥 이러면 좋겠다. 시골로 이사 가서 그냥 편히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싶다고 생각만 했는데 일단 돈이 없으니 마음대로 이사라는 것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소리를 하고 불과 3개월 만에 예산군 대술면으로 갑자기 이사를 하게 되었답니다.
나는 생각만 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아는 형님이 빈 집이 하나 있는데 년세만 주고 들어가 살 마음 없냐기에 바로 가서 집을 보고 계약하고 바로 이사를 하게 되었답니다.
처음엔 우연의 일치인가 했는데 나중에 알고 느끼고서는 이건 내 절실함이 창조했다는 느낌을 확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영적인 공부와 철학적 공부등 책도 많이 읽으면서 공부에 전념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건 "뿌린데로 걷는다" 는 말이 사실적 현실임을 확 깨달은 기회가 찿아오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