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13 저에 삶에 대해여 6 참 아이러니 하게도 병원에서 사망 선고만 받은 게 3번이나 되었는데도 결코 죽지도 않고 계속 살아난다는 게 저로써도 이해가 안 갔습니다. 저로써는 오히려 죽을 수 있으면 죽고 싶었으니까요. 그래서 죽는다는 것에 그 어떤 두려움도 없었답니다. 죽자 하니까 더 안 죽게 되는 것인 가봐요.그렇게 병원에서도 기적이라며 놀라고 나도 놀랐지요. 제가 한 것 이라고는 그저 먹고 죽자는 것뿐인데 이렇게 될 수가 있는 건지 의아해했지요. 단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까 아무 생각 없이 지내게 된 것이 어찌 보면 음식괴 맞아떨어져 이렇게 된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그때 코로나도 제일 심할 때였습니다. 결국 모든 병은 스트레스와 부정적인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에서 촉진되는 게 사실이더군요, 제가 가끔 세상 걱정을 하는 날.. 2024. 7. 10. 저에 삶에 대하여 5 그렇게 희망을 안고 출소를 하였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아내를 찾아갔고 아내를 밖에서 보니까 그렇게 반갑고 미안해지더군요. 하지만 그런 마음과 기쁘도 잠시 일뿐이었답니다. 2년 6개월 만에 너무 많은 변화가 일어났더군요. 제가 없으니까 전혀 찾지도 않던 아버지와 작은 형님이 큰 형님 돌아가신 곳에 가자며 아내를 데리러 왔는데 글쎄 제가 들어도 어이없는 소리들을 했더군요. 부산까지 가는데 둘 다 돈이 없으니 아내 보러 모든 경비를 대라는 소리를 했다더군요. 그때 당시 5살짜리 아들과 15살 딸을 혼자서 수급자 신분으로 키우고 있는 사람 보러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미안할 건대 전혀 그런 기색도 없이 말했다는 사실에 내가 더욱 화가 나더군요. 저를 아들 취급도 안 하던 아버지와 동생 취급도 안 하.. 2024. 7. 9. 저에 삶에 대하여 4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는데 오니까 진천군 면사무소애서 직원분이 나오셨습니다. 제가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는 걸 들으시곤 기초 수급자 등록을 도와주러 오셨답니다. 그렇게 선교사님을 통해서 도움을 받아서 수급자가 되었고 나러에서 각종 혜택을 통하여 그나마 그때는 큰 도움을 받아서 살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먹고만 살 수가 있었지 부수적인 활동은 제약이 심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으며 또한 나에게 있는 빛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이라 계속되는 빛에 대한 전화와 압박은 여전히 심했으며 여러 요인의 심리적 압박은 심했습니다. 저희 어머님은 이미 3년 전 폐암으로 돌아가신 상태입니다.전 그래도 이렇게 도움을 통하여 살 수가 있었고 또한 오창에서 폐목재 사업을 하시는 사장님의 도움으로 화물차 운전을 할 수가 있었습.. 2024. 7. 9. 저에 삶에 대하여 3 참 인생이라는 것이 왜 이리 꼬이는지 그때는 정말 이유도 몰랐고 뒤 돌아볼 생각 자체도 없었으니까요. 그렇게 군대를 제대하고 직장이라고 들어간 곳이 덤프트럭 기사로 취직을 했습니다. 처음 한 달은 잘 나갔는데 두 달째부터 월급이 안 나오더니 결국 회사가 부도나면서 차량은 전부 넘어가고 기사들은 월급도 못 받고서 쫓겨나다시피 했으니까요.그때 당시는 이런 업종은 거의 지역 건달들이 많이 하고 있어서 웬만해선 돈 달라는 소리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답니다.잘못하면 오히려 협박을 당하는 처지가 되어서 더욱 곤경에 처하곤 하니까요. 그렇게 또 잘리고 나니까 방세도 밀리고 먹는 것도 띄엄띄엄 먹기도 하고 정말 꼴이 아니었답니다. 이미 부모님과 형제들 하고는 원수처럼 지내고 있었으니 도움을 요청할 곳 이라고는 아예 없.. 2024. 7. 8. 이전 1 2 3 4 다음